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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3.20 극단적 선택 물티슈 브랜드 몽드드 CEO 유정환 생애 재조명
posted by 퍼스트 희망봉 2023. 3. 20. 15:21
유정환 대표
1980년생으로 유년시절 친부모가 아닌 입양이 되어 자랐습니다. 입양 사실을 중학교 시절 알게 되 많은 방황을 하던 중 20대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2009년 물티슈 브랜드인 '몽드드'를 출시하며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고졸 출신 사업가로 29살 단돈 800만원을 가지고 유아 물티슈 브랜드 몽드드를 설립해 연매출 500억 성공 신화를 쓰며 유망한 CEO로 주목받았지만
 

유정환은 자수성가로 큰돈을 벌게 되었지만 너무 젊을때 성공이 독이였는지, 돈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물티슈 유해성분 논란, 마약, 강남 벤틀리 폭주 등의 사건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사업에 실패한 이후 M&A 합병 사업에도 도전했지만 실패로 끝났습니다.

흙수저 가정에서 물티슈를 창업해 성공신화를 쓰던 유정환은 여러 봉사활동도 많이 하며 자선사업가 이미지도 많이 구축했습니다. 이러한 그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몽드드 물티슈에서 유해성분이 검출 소식이 보도되면서입니다.

 

한 매체에서 몽드드 물티슈에서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라는 유해성분이 검출되었으며, 이는 날씨가 더운 날에 발현되는 성분으로 함부로 사용할 시 흥분과 발작, 호흡근육 마비, 구토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보도에 몽드드 측은 해당 물질은 어느 기관에서도 유해물질 혹은 독극물질로 분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로 인해 몽드드 물티슈는 7만건의 환불로 부도위기까지 갔지만 몽드드의 명확한 대처와 산업자원부의 공식 발표로 몽드드 물티슈 유해 논란은 가라앉았습니다. 이후 몽드드의 민심은 빠르게 회복되었고, 몽드드 임직원과 직원들의 노력으로 몽드드는 살아났습니다. 하지만 이후의 사건 때문에 몽드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유정환은 몽드드 대표에서 물러난 이후 청담 메이드 클럽을 오픈하게 됩니다.

이렇게 빠르게 회복하며 연매출 500억을 달성하던 2015년 2월 11일 서울 강남구 도산사거리에서 벤틀리 폭주사건이 발생 합니다.  이 사고의 충격으로 바퀴가 빠졌지만 그 상태로 500m가량을 더 달렸습니다. 그는 차량이 멈춰 서자 갓길에 세워져 있던 아반떼를 훔쳐 타고 다시 질주하다 금호터널 인근에서 BMW와 충돌한 뒤 멈췄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유정환이 붙잡혔을 때 2월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팬티만 입은 상태에다가 폭행까지 휘둘렀습니다.

유정환은 이런 질주를 한 이유로 불면증으로 처방받은 수면제를 과다 복용한 탓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소변과 머리카락을 분석한 결과 필로폰으로 불리는 메스암페타민 양성반응이 나왔습니다. 결국 그는 지난 2015년 5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차량 등 혐의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징역 2년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당시 "유정환이 '벤틀리 엽기 질주 사건'을 저질렀을 때 옆에 타고 있던 동승자 연예인라는 의혹이 있다. 단정적으로 얘기 못하는 건 경찰이 수사를 안 했기 때문"이라며 "유정환은 여자 연예인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교도소에서 나온 뒤 어떤 여자 친구를 만나기 시작한 유정환은 여자친구에게 벤츠 차량, 용돈 등 물질적인 부분을 많이 제공해준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당시 유정환의 지인들은 이를 좋지 않게 보고 유정환에게 "네가 돈이 없냐, 뭐가 아쉬워서 저 여자 만나냐, 위험해 보이니 다른 사람을 만나라"라고 조언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정환은 이에 대해 "내가 많은 여자를 만나봤지만, 여자를 새로 알게 됐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만큼 유정환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것인데요. 유정환과 여자친구는 잘 만났으며 미국 라스베가스에 여행도 같이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라스베가스에 다녀온 이후 사업도 잘 안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몽드드를 매각하였고 이 매각 대금과 그동안 모아놓은 자금으로 M&A(인수·합병) 업계에 뛰어들었다가 실패를 맛봤고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니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돈을 잃고 고향으로 내려가 폐인처럼 살다 집에서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화려했던 삶과는 달리 장례식은 조용하게 치러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