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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5.09 히틀러 유태인 탄압 유태인 학살한 이유 원인
posted by 퍼스트 희망봉 2020. 5. 9. 16:58

일반적으로 독일인들이나 유럽 기독교 세계에서 반(反)유태인 의식이 굳혀진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유태인들은 예수를 죽인 사람들이다」라는 편견 : 예수를 이단이라고 몰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유태인들은 지금도 예수(그도 유태인이지만)를 구약이 예언한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다. 기독교가 받드는 예수를 「가짜 메시아」로 보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와 유태인들은 성경 중 구약(舊約)을 공유(公有)하고 있지만 예수의 정통성 문제로 해서 숙적이 되고 말았다. 중세 유럽에서 유태인은 개종(改宗)을 거부하다가 종교 재판에 걸려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죽인 민족의 후예들」을 죽이는 것에 대하여 기독교인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기독교 마틴 루터도 유태인들에 대한 증오는 구교(舊敎)와 다름이 없었다.


▲「유태인들은 만악(萬惡)의 근원이다」는 사상 : 유럽 기독교 사회에서는 페스트나 패전(敗戰), 경제불황 같은 것이 생기면 정치인들이 「유태인의 음모」라고 선동하여 이들을 학살함으로써 불만을 해소하는 전통이 이어져 왔다. 중세 독일에서는 페스트가 확산되자 이것이 유태인들이 퍼뜨린 것이란 음모설이 번져 수많은 유태인 마을이 멸종되다시피했다. 이런 박해 때문에 16세기 중엽까지 서(西)유럽의 유태인들은 거의가 추방되어 박해가 덜한 동(東)유럽과 오토만 투르크로 이주했다.

▲「유태인들은 생산적인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금리(金利)나 챙기는 사회의 기생충적 존재다」는 사상 : 중세때 유태인들은 가정내 교육으로 해서 문자해독률이 높았다. 이 때문에 그들은 세리(稅吏), 금융업, 법률가, 전문직, 기술자로 일한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서민들에게는 유태인들이 권력층의 비호 아래 못사는 사람들을 착취한다는 생각을 불렀다.


▲「독일 유태인들이 1차 세계대전중 입대를 기피하고 전쟁특수(特需)를 이용하여 돈벌이만 했다」 : 이것은 유태인들의 사보타지가 독일의 패전을 불렀다는 식으로 생각되었다.

유태인들에 대한 이런 뿌리깊은 역사적 편견을 정당의 정책으로 들고 나온 것이 히틀러의 나치였다. 히틀러는 1933년 선거를 통해서 정권을 잡았다. 반(反)유태주의를 정책으로 삼고 있는 나치당에게 표를 몰아준 독일 유권자들이 바로 유태인을 학살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1930년대에 수많은 독일 마을 입구에는 「유태인 출입금지」「소매치기와 유태인에게 경고」「유태인들은 이곳에 들어올 때 위험을 각오할 것」이란 푯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삭소니 지방에서는 나치당이 주최한 반(反)유태인 집회가 2주간에 1천3백50회나 열렸다. 1938년 11월9∼10일에 독일 전역에서 유태인 습격, 방화,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한 유태인이 독일 외교관을 살해한 사건에 대한 보복이었다. 선전상(宣傳相) 조셉괴벨스가 유태인들에 대한 공격을 선도(先導)했다. 유태인들의 상점이 주로 공격을 받고 산산조각 난 유리조각이 거리에 깔렸다고 하여 이날을 「크리스털의 밤」이라고 부른다. 이 사건으로 유태인 약 1백 명이 살해되고 약 3만 명이 집단수용소로 쫓겨 갔으며 수백 개소의 유태교 성소(聖所)가 파괴되고 7천5백이 넘는 상점들이 공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