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퍼스트 희망봉 2024. 8. 9. 09:32

영국 사우스포트 지역사회가 이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슬퍼하는 동안 극우 단체들은 이번 사건을 자신들의 사상을 전파하고, 유색인종들을 협박할 기회로 삼았다. 지역사회의 평화로운 집회는 곧 폭력과 파괴로 이어졌다. 폭도들은 경찰을 향해 벽돌, 연막탄 등을 투척할 뿐만 아니라 망명 신청자들이 머무는 호텔까지도 표적이 됐다.

그리고 일련의 불안 사태는 이내 헐, 리버풀, 맨체스터, 블랙풀, 벨파스트 등 다른 지역으로도 번져나갔다.

이에 따라 인도, 나이지리아, 말레이시아 등 일부 국가에선 영국에 여행 경보를 내렸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총리 관저에서 열린 언론 인터뷰에서 “극우 폭력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면서, “이러한 행동엔 아무런 정당성도 없다”고 비난했다.

BBC Verify 팀의 분석에 따르면 거리에 나와 시위를 벌이거나, 사우스포트 칼부림 사건에 대해 온라인 게시물을 올리는 이들 모두가 비주류 의견의 신봉자이거나, 폭동을 지지하거나, 극우 단체와 연관 있는 건 아니다.

이번 폭동은 평소 폭력 범죄를 우려했거나, 칼부림 사건이 불법 이민자와 관련 있다는 가짜 뉴스에 현혹된 사람들도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

 

가짜 뉴스

사우스포트의 칼부림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범인의 신원에 대한 가짜 뉴스가 SNS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미성년자이기에 현지 경찰은 17세 소년이 기소됐다는 사실만 확인해 줬다. 그러면서 시민들을 향해 그 어떠한 추측도 자제해달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범인이 배를 타고 영국에 온 이슬람교도 망명 신청자라는 소문은 극우 SNS 인플루언서들에 의해 더 불이 붙었고, 이들은 시민들에게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부추겼다.

BBC Verify 팀은 X(구 ‘트위터’)에서 활동하는 이러한 인플루언서 중 하나로 극우 단체인 ‘잉글랜드 수호자 리그’의 창업자와 연관된 인물로, ‘토미 로빈슨’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스티븐 야슬리-레논’이 있다고 보도했다.

BBC Verify의 보도에 따르면 소셜미디어에선 거짓 주장이 넘쳐나기 시작했으며, 이에 심지어 극우 개인 및 단체와는 아무런 관련 없는 평범한 시민들에게도 이러한 정보가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편 극단주의 반대 연구 단체인 ‘호프 낫 헤이트’의 조 멀홀 연구 책임자는 “(이번 사태의) 원동력을 단 하나로 콕 집어 말하긴 어렵다”고 했다.

“이는 현대 사회의 극우주의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많지만, 회원 시스템이 구축된 것도 아니고, 배지를 달고 다니는 사람도 없습니다. 심지어 공식적인 지도자도 없죠. 다만 SNS 인플루언서들이 이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개념의 조직보다는 마치 물고기 떼와 비슷하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인종 차별과 이민

 

지난달 초에 치러진 영국 총선에선 소형 배로 영국에 오는 이민자 등 이민 이슈가 화두로 떠올랐다.

이번 총선에선 나이절 패라지도 의석을 차지했다. 브렉시트 찬성 운동을 이끈 인물 중 하나인 그가 ‘필수적이지 않은’ 이민자 유입을 동결하자고 촉구하는 정당인 ‘영국개혁당’의 지도자로서 마침내 주류 정치에 발을 디딘 것이다.

이번 폭동에 대해 패라지 의원은 “우리 국민 대다수가 통제되지 않은 대규모 이민으로 우리 지역사회가 어떻게 갈라졌는지 목도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지금껏 발견된 증거에 따르면 영국인들은 합법적, 불법적 이민 모두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올해 2월 ‘입소스’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2%가 현재 이민자 유입 규모가 너무 크다고 생각한다. 2년 전엔 42%로 조사된 바 있다.

그러나 해당 설문 조사에서 전반적으로 시민들은 이민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에 비해 긍정적인 태도를 더 많이 드러냈다. 그러나 그 차이 또한 2022년 이후보단 좁혀졌다.

한편 극우 성향의 ‘애국적 대안’ 등 반이민 시위를 조직한 다른 단체들은 사우스포트 사건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이용해 집회를 조장했고, 이는 무질서한 폭력 사태로 치달았다.

더 많은 극우 극단주의 단체가 모여들어 대규모 이민자 추방을 요구하고 나섰다.

‘인디펜던트’지 소속 국내 소식 담당 편집자 출신으로 책 ‘음모자: 실패한 영국의 테러리스트들’의 저자인 리지 디어든은 BBC ‘라디오 4’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에서 극우 세력의 비대화를 끊임없이 막아주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내부 싸움이지만, 사우스포트 사건은 실제로 이들을 하나로 모아줬다”고 지적했다.

 

영국 전역의 모스크(이슬람 사원)가 인종차별적 공격의 표적이 되며 일부 지역에서는 특별 경찰 인력이 투입되기도 했다.

망명 신청자들이 머무는 호텔도 인종차별 및 반이민 시위대의 주요 대상이 됐다.

패디 오코넬 BBC 기자는 영국 남부 앨더샷에서 망명 신청자들이 머무는 호텔 밖에서 시위대가 몰려드는 장면을 목격했다.

오코넬 기자는 BBC ‘뉴스캐스트’ 팟캐스트에서 “페이스북에서 주거 문제 및 사회 통합 문제를 부각하기 위한 평화적인 시위였으나, 점차 상황은 나쁘게 변해갔다. 벽돌을 던지고, 인종차별적인 욕설을 퍼부었다. 그 호텔 안에 있기 정말 두려웠다”고 설명했다.

오코넬 기자는 호텔 밖 거리에서 영국으로 망명을 신청한 아프가니스탄 출신 자매 2명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22살인 언니는 “저들(폭도)은 갑자기 쳐들어와 차를 세웠다. 호텔 벽을 타고 올라가 심지어 벽, 문 등을 부수고 창문을 깨려고 했다. 정말 무서웠다”고 말했다.

17세의 여동생 또한 “또한 우리에게 욕설을 퍼붓고 우리 모습을 촬영했다. 좋은 행동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재미를 위한 약탈

 

한편 일부 시위대는 이번 폭동을 이용해 시내 중심가 상점 약탈 등 범죄를 저지르고 나섰다.

잉글랜드 북동부 도시 선덜랜드에서는 ‘그레그스 빵집’ 체인점과 ‘낫웨스트 은행’ 지점 하나가 침입당했으며, 블랙풀의 한 상점 거리에서도 약탈 사례가 신고돼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북동쪽 헐 지역에서도 한 BBC 기자가 약탈 장면을 목격했으며, 수많은 상점이 파손됐다. 상점 한곳과 길거리에 널브러진 물건엔 심지어 불까지 붙었다.

이에 시내 중심가 상점들은 일찌감치 문을 닫았으며, 대중교통 운행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한편 선덜랜드 시의회는 지난 3일 X에 “선덜랜드는 따뜻하고 친절한 것으로 잘 알려진 지역이다. 오늘 밤 일어난 이번 사건은 이렇게 자랑스러운 우리 도시와 도시민들의 모습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우리는 늘 그랬듯 함께 나서 우리 지역사회의 평온을 회복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선덜랜드 시장 또한 “이러한 사건은 주민들의 감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우리 시의회가 나서 밤새 청소에 나섰다는 것도 정말 큰 사건”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저는 … 선덜랜드 시민들이 오늘 아침 함께 모여 청소를 도와주고 있다는 점에 가슴이 뭉클합니다.”

모하메드 이드리스

 

아일랜드 벨파스트 남부에서 모하메드 이드리스가 운영하는 ‘배쉬 카페’도 지난 3일 폭력 시위 중 불길에 휩싸였다. 이드리스는 가게 문을 다시 열 생각이 없다고 했다

이드리스는 BBC 북아일랜드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에도 벨파스트 샌디 로우에 있는 자신의 가게가 표적이 된 적 있다며, 자신이 운영하는 곳들은 이미 과거에도 공격 대상이 된 적 있다고 털어놨다.

“제 컴퓨터 상점도 이 카페처럼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이 카페는 지역사회를 위한 공간이자, 희망이었으나, 이제 이곳엔 희망이 없습니다.”

 

지역사회 서비스 예산 삭감에 대한 불만

 

한편 일각에선 수년간 이어진 긴축 예산 및 지역사회 공공 서비스에 대한 정부 지원 자금 삭감의 영향을 지적하기도 한다.

사우스포트 불안 사태 초반, ‘호프 낫 헤이트’는 이전 내각에서 “예산을 삭감하고, 이 지역을 우선시하지 않으면서” 지난 몇 년간 지역사회 결속력이 약화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새로 출범한 내각은 지역사회 강화를 위해 지원하고, 이와 같은 사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에선 2010년~2019년까지 긴축 정책이 이어졌다.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의 조지 오스번 전 재무장관부터 그 이후 재무장관들은 복지비, 주택 보조금, 사회 서비스 부문에 대한 지출을 약 300억파운드(약 52조4000억원) 줄였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재정적 불안정성으로 인해 청년들이 극우 급진주의에 더 쉽게 빠져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게다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상황은 더욱더 악화했을 수도 있다.

대테러 담당 형사인 가레스 리스 경감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더 고립됐다. 스포츠, 레저 활동, 사교 모임에도 참여할 수 없었고, 교사나 가족 등 이러한 (극단적인) 견해에 반대해 줄 주요 네트워크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분석: 마크 이스턴, BBC 국내 뉴스 편집장

매일 끔찍한 범죄 기사를 마주하다 보면 영국이 점점 더 위험한 무법지대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실시한 ‘범죄 설문 조사’에 따르면 범죄 관련 경험에 대한 시민들의 대답은 정반대이다.

잉글랜드 선덜랜드에선 꽤 많은 이들이 지난 2일 밤의 사태를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은 국가에 대한 분노를 표출할 기회로 여기는 듯했다.

한편 덜 즉흥적으로 시위가 벌어진 곳도 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선 도심에서 문제가 벌어지기 직전, 기차가 서더니 영국 국기를 휘감은 남성들이 가득 내렸다. 역 밖에선 남부 억양을 쓰는 사람들이 이들을 맞이했다.

지금은 사라진 단체인 ‘잉글랜드 수호자 리그’와 연관된 몇몇 얼굴도 눈에 띄었다.

사실 영국 국내 상황에 대해 지난 45년간 취재하면서 인종적 갈등을 처음 목격한 건 아니다.

이번에 달라진 점은 군중을 선동하려는 이들은 사실 여부를 그다지 걱정하지 않고도 SNS에 마음대로 글을 게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외국 소유의 웹사이트가 적극적으로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있다는 증거도 있다. 자칭 ‘애국자’라고 부르짖는, 무정형의 여러 단체들과 연관된 극단주의자들은 이러한 가짜 뉴스를 덥석 받아들이고 더욱더 퍼뜨린다.

자신이 사는 곳에서 일어난 폭력 사태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분명 지금은 매우 우려되는 시기이며, 최악의 순간은 지나간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잉글랜드 하틀풀에선 시위 후 청소 작업이 이어지고 있으며, 오늘날의 영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안전하고 관용적이라는 연구 조사 결과도 있다.

그렇기에 지금 목격하는 극우 폭도들의 모습이 영국의 분위기를 대표한다고 가정해 버리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