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퍼스트 희망봉 2025. 1. 22. 17:24

 

범법자 이죄명과 로베스 피에르는 닮은 꼴이다

대통령없고 국방장관도 없고 범법자만 설치는 나라꼴..

프랑스혁명과 닮은 꼴~

좌파 정치인들은 모두 단두대로 사라지고

영웅 나폴레옹이 돌아온 역사의 되풀이

"로베스피에르, 다음은 네 차례다."

 

조르주 당통이 처형되기 전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에게 한 말이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그리고 혁명동지였던 당통을 처형한 로베스피에르. 그는 프랑스의 법률가 가정에서 태어나 변호사, 혁명가, 정치가로서 18세기 프랑스 혁명을 이끌었던 주요 인물 중 한명이다.

 

그의 유년시절은 제대로 된 옷 한 벌 없어 외출을 삼가 할 정도로 남루한 시절로 점철됐지만, 우수한 성적으로 500명의 학생들을 대표해 루이 16세의 대학방문에 축사까지 한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법률가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으로 명성을 얻은 그는 1789년 31세의 나이로 정치에 입문한다. 국왕을 타도하는 프랑스 혁명의 혼란 속에서 자코뱅의 거두로 성장한 로베스피에르는 왕의 거부권을 반대하고 행정권의 남용과 종교적·인종적 차별을 배격하는 등 일약 혁명가로 성장한다.

 

1792년 8월 봉기로 국민공회 정부가 들어서고 프랑스 공화국이 수립된 후 로베스피에르는 공화국 체제의 완비를 위해 루이 16세를 처형한다. 그러나 자코뱅 내부에서 왕정 폐지와 공화정 수립을 위해 함께 노력했던 당통마저 처형시키면서 그는 무소불위 권력은 의회독재라는 감투를 쓰고 프랑스를 피로 물들인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로베스피에르, 다음은 네 차례다"라는 말은 로베스피에르와의 권력 투쟁에서 밀려나 형장으로 끌려가던 당통이 피에르의 집 앞에서 외쳤던 저주다. 이후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의 집권 기간 프랑스를 공포 정치로 다스린다. 1793년부터 1년 동안 약 30만명의 사람들을 체포하거나 사형한다. 그것도 합법을 가장한 의회 독재로 말이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의 독재도 당통과 같은 수많은 영혼의 저주 앞에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는 1794년 7월 26일 국민공회에서 인생 최악의 연설을 한다. 불특정 다수를 가리켜 반(反)혁명파로 모독했고, 이에 죽음을 감지한 의원들이 "독재타도!"를 외치며 로베스피에르를 끌어내린다. 그렇게 로베스피에르는 자신만이 '정의'를 부르짖을 수 있다는 오만함 때문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이 사건이 '테르미도르 반동'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과거 프랑스 혁명의 경험을 되새기라고 로베스피에르가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 같다. 다가오는 봄이면 2년이 다돼가는 22대 국회에서 그동안 국민이 느낀 것은 다수당의 입법독재와 그로 인한 사법부·행정부를 향한 탄핵과 무정부주의였다.

 

가난을 벗어던지고 변호사로 성공해 거대 야당 대표가 된 이재명 대표가 로베스피에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선(善)으로 시작해도 악(惡)으로 끝나면 악인(惡人)이다. 오직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 의회민주주의를 타락시킨 이재명 한 사람이 불러온 결과는 오늘 대한민국의 정치사를 처참하게 만들고 있다.

 

비상계엄을 한 대통령도 법과 원칙에 어긋난다면 당연히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마땅하지만, 입법 독재로 의회민주주의를 타락시키고 삼권분립을 훼손한 이재명 대표도 책임을 지기는 마찬가지다. 자신을 수사하는 검사들을 향한 탄핵과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의 권한을 부정한 행정부 탄핵, 그리고 정부예산 삭감 등은 합법을 가장해 국정을 마비시키려는 '입법 독재' '내란'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것이 정의였는지 국민들은 다 알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재명 대표의 얼굴에서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이 보이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권력욕을 내려놓고 국가의 미래를 도모한다면, 후세에 로베스피에르처럼 악인으로 남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