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놈은 빨리 손절이 답이죠
서른살 예신입니다. 예신이었죠. 남자친구는 세 살 연상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해, 400만원대의 주얼리 세트를 못해준다고 해서 파혼합니다.
저희 결혼은 요즘 다들 외치는 반반 결혼으로 준비했습니다. 일부러 자로 잰건 아니고 둘의 상황이 비슷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습니다.
직장, 연봉도 비슷하고 집을 살 때도 각자 살던 오피스텔 전세금을 빼서 넣었는데 그 금액도 비슷합니다. 모은 금액도 비슷하고, 결혼 비용도 반반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집안에서 도움을 좀 많이 받아서 남자친구에게 예물로 차를 해줬습니다. 이사가면서 신혼집과 제 회사가 많이 가까워졌기 때문에 제가 타던 차를 팔고 거기에 보태서 국산 신차를 계약했습니다. 아주 대단한 차는 아니지만 원래 차가 없던 남자친구가 매우 기뻐했고, 저도 큰 선물을 해줄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그에 반해 저는 결혼식이나 프러포즈에서 크게 바라는 건 없었습니다. 명품이나 결혼 핑계로 이것저것 사고 먹고 노는 짓 안했구요. 그런데 제 로망이 퀄리티 좋은 주얼리 세트였습니다. 귀걸이, 목걸이, 반지 같은 라인으로 맞추는 거요.
이 부분은 차 계약하기 전에 남자친구와 이야기되었던 부분입니다. 차를 계약하고 며칠 뒤 제가 주얼리를 골라서 직접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제가 고른 제품은 완전 데일리는 아니지만 좀 꾸미는 날이라면 평소에도 충분히 착용할 수 있는 제품이고 400만원대였습니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약속한 날 갑자기 일이 생겼다며 며칠 뒤로 약속을 미뤘습니다. 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알겠다 했습니다. 그런데 새로 잡은 약속 날 또 급히 회사 일이 생겼다며 너무 미안하다, 다음에 꼭 가자 하더라구요. 이번에는 정확히 날도 잡지 않구요. 그렇게 약 열흘가량이 늦춰졌습니다. 열흘동안 남자친구를 못봤어요. 2년 정도 만나면서 그정도로 오래 특별한 일도 없이 만나지 않은 건 처음이었어요. 이때 좀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어쨌든 주말이 돼서 남자친구를 만났습니다. 이제 주얼리샵에 가자고 말하기도 애매했어요. 장난감 사달라고 조르는 애같고.. 남자친구가 먼저 가자고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데이트하는 내내 뭔가 회피하는 사람처럼 강박적으로 대화를 이어가고 불편해보였어요.
그냥 직접 물어봤습니다. 제가 고른 제품이 너무 비싸서 부담되냐구요. 그제야 그냥 주얼리는 안하면 안되겠냐고 하더라구요. 저는 너무 기분이 상했습니다. 이 결혼에서 신부로서 원하는게 딱 4백 몇십만원이었는데.. 그걸 못사서 서운한 건 둘째치고, 차 계약 전날까지는 그래그래 그거 사자 하다가 딱 계약하고 오니 만남 피하면서 말 바꾸는게 제일 화가 났습니다.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힘들다고 말하든가요. 그리고 남자친구 수입이며 저축한 금액 등을 생각하면 그정도 예물로 못할 것도 아닙니다.
남자친구는 그런 비싼 악세사리 사봤자 하지도 못할거 왜 굳이 사냐, 그걸로 집 대출을 갚자, 신행을 가자 이런 입장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충분히 평상시 착용할 수 있는 디자인입니다. 제가 그럼 내가 해준 차도 취소하고 대출금으로 넣자 했습니다. 그러자 차는 어차피 둘이 같이 쓰는 거랍니다.
그런데 전 회사가 가까워져서 결혼하면 오히려 지하철로 출퇴근할 예정입니다. 또 차는 제 의견이 거의 들어가지 않은 순수하게 남자친구가 고른 차입니다. 물론 같이 탈 일도 있겠죠. 하지만 제가 계약할 때도 그냥 남자친구 선물로 생각했지 침대마냥 같이 쓸 혼수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오빠가 안해주겠다면 내 돈으로라도 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왜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를 부리려 하냐며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집 대출이 우선인데 왜 그깟 보석에 헛돈을 쓰냡니다. 결혼을 앞둔 여자들이 메리지 블루에 걸리는 것처럼 제가 판단력을 잃었다네요. 자기 말대로 하는게 나중에는 잘했다고 생각할 거라고.
이날은 대판 싸우고 집에 갔습니다. 데이트할 때 뭘 먹거나 어디 여행갈 때도 과하게 구두쇠처럼 굴고 사람 기분 상하게 하진 않았던 사람이라 더 당황스러웠습니다. 남자친구 말대로 제가 억지를 부리고 있나 싶기도 했구요.
다음에 만났을 때 그럼 오빠 차도 취소하고 내 취향도 반영하고 가격도 좀 더 낮춰서 다시 계약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절대 안 된다며 그깟 악세사리 못사게 했다고 악감정으로 이러는거냐, 사람을 가지고 노는거냐 하더라구요.
나는 결혼 예물 400도 못쓰는데 오빠는 거의 4천 가까이 쓰는게 말이 안되지 않냐, 오빠 말대로라면 차도 최대한 절약해서 집 대출로 넣는게 맞지 않냐 하면서 유치하게 싸웠습니다. 남자친구는 저에게 왜이렇게 생각없이 어린애처럼 구냐, 그렇게 안봤는데 결혼하니까 남들한테 과시할게 그렇게 필요하냐 그러구요.
그 과정에서 남자친구가 자기건 못버리고 나한테만 근검절약을 강요하는구나 정말 이기적이구나 많이 느꼈습니다. 예물로 주도권을 쥐려는 건가 싶기까지 했습니다.
그제야 남자친구가 평소에 자기 취미에 일이십씩 쉽게 쓰던 것, 최상급 용품들 한번씩 지르던 것, 기분 따라 돈을 쓰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 등 일부러 외면했던 게 보이더라구요. 자기 회사 여자 동료들이 고급 호텔이나 명품 인스타 올리면 못마땅한 시선으로 보던것도요. 저도 그런 과시적 소비 싫어해서 별 생각 없었는데 제가 부인이 되면 저도 자기의 이중적인 기준에 맞춰야 하는 거였나봐요.
결국 파혼 통보했습니다. 남자친구는 이게 말이 되냐며 난리였어요. 결혼을 이렇게 쉽게 생각하냐, 자기를 이렇게 쉽게 생각햐냐, 겨우 그 악세사리 때문에 결혼을 무른다는게 말이 되냐, 차 값이 아깝냐 등..
저도 파혼의 발단이 주얼리 세트라는게 어이없긴 합니다. 이렇게 파혼하는게 맞나 싶기도 하구요 아직까지. 이번 주말에 차 계약을 취소하려고 하는데 이게 정말 맞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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